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인가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뒤집어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 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레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놀이 안 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 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신동엽, <산문시1>
석양 대통령과 하늘나라 – 신동엽의 시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바라보다
세상의 권력과 부가 중심이 되는 시대 속에서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 1」*은 전혀 다른 가치관을 노래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스칸디나비아라든가 중립국이라든가 하는 곳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물질적 성공과 정치적 권력을 초월한 공간이다. 대통령은 석양을 바라보며 딸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들르고, 국무총리는 뙤약볕 속에서 시민들과 함께 줄을 서며, 노동자의 주머니에는 기름 묻은 책이 들어 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가 아는 세상의 질서와는 사뭇 다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곳은 마치 하나님 나라의 한 조각처럼 보인다. 성경은 종종 세상의 가치와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첫째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첫째 되리라”(마태복음 20:16)고 하셨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무사람의 끝이 되며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 9:35)고 가르치셨다. 신동엽이 그리는 세상은 바로 이런 거꾸로 된 가치의 세계다.
여기서 ‘석양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권위와 힘의 상징이지만, 이 시에서의 대통령은 자전거에 막걸리를 싣고 시인의 집을 찾아간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마가 아니라 나귀를 타셨던 모습(마태복음 21:5)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의 권력자는 보통 권위를 드러내지만, 참된 리더는 겸손과 소박함 속에 진정한 힘을 품고 있다.
이 시에서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평화’다. 시인은 ‘어느 패거리에도 총을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을 찬미한다. 성경에서도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라고 말씀하셨다. 신동엽이 꿈꾸는 나라는 전쟁과 폭력이 없는 곳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샬롬(참된 평화)’이 실현된 세계와도 닮아 있다.
또한, 시인은 ‘하나에서 백까지 다 대학 나온 농민들’을 언급하며,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성숙과 지성이 있는 사회를 꿈꾼다. 이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는 말씀과 맞닿아 있다. 진정한 부유함은 돈이 아니라 깨달음과 사랑, 그리고 참된 평화 속에 있다.
이 시는 이상향에 대한 꿈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곳이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노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치임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누가복음 17:21)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를 이루고, 탐욕 대신 사랑을 선택할 때, 석양 대통령이 거니는 그 나라가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동엽 시인 소개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민족적 저항과 역사적 성찰을 바탕으로 시를 창작한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그는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며,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민족의 화해를 노래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시에는 강한 역사 의식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깃들어 있으며, 한국적 정서와 서정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생애와 약력
- 1930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출생
- 195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입학 (6.25 전쟁으로 학업 중단)
- 1959년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 1959년 『자유문학』에 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
- 1967년 장편 서사시 『금강』 발표 (민족의 역사와 현실을 형상화)
- 1969년 간암으로 사망 (향년 39세)
신동엽 시인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적 성향과 강렬한 저항 의식을 담은 시들을 발표하며, 1960년대 한국 시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그의 시는 단순한 현실 비판을 넘어 역사적 통찰과 철학적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 작품 및 시집
1. 시집
- 『아사녀』 (1963)
- 『껍데기는 가라』 (1970, 유고 시집)
2. 서사시
- 『금강』 (1967)
3. 산문 및 기타 작품
- 『신동엽 전집』 (사후 출간)
대표 시
- 「껍데기는 가라」
- 「산문시 1」
-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 「금강」
- 「종로5가」
신동엽 문학의 특징
- 민족적 역사관
-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민중적 시각에서 형상화
- 한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탐구
- 강한 저항 정신
- 「껍데기는 가라」와 같은 작품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개혁 의지를 드러냄
- 서정성과 철학적 사유
- 단순한 정치적 외침을 넘어 인간 본질과 길(道)에 대한 성찰적 사유 포함
- 한국적 정서와 자연 이미지 활용
- 전통적 자연 이미지(금강, 대지, 쟁기 등)를 통해 역사적 현실과 이상을 결합
신동엽 시인은 시대적 아픔을 노래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강한 울림을 주며, 민족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적 가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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