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언제부턴가 진주에 장기 출장가 계신 아빠 모르게 엄마는 일을 나가셨다. 오늘처럼 주룩주룩 비가 계속 내리는 오후 학교를 일찍 파한 나는 집 창틀에 걸터 앉아 로보트태권브이 노래를 부르며 엄마를 기다렸다. 봉일시장 버스 정류장을 지나 복개천길을 걸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 레시버를 귀에 꽂고 mbc청룡 유승안 선수가 대타로 나와 홈런을 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