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 <강물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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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저 문장을 바꾸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이야기인지

옮겨 적을 수도 없는 비의를 굳이 알아서 무엇하리

한 어둠이 다른 어둠에 손을 얹듯이

어느 쪽을 열어도 깊이 묻혀버리는

이 미끌거리는 영혼을 위하여 다만 신발을 벗을 뿐

추억을 버릴 때도

그리움을 씻어낼 때도 여기 서 있었으나

팽팽하게 잡아당긴 물살이 잠시 풀릴 때

언뜻언뜻 비치는 눈물이 고요하다

 

강물에 돌을 던지지 말 것

그 속의 어느 영혼이 아파할지 모르므로

성급하게 건너가려고 발을 담그지 말 것

우리는 이미 흘러가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었던가

 

완성되는 순간 허물어져 버리는

완벽한 죽음이 강물로 현현되고 있지 않은가

나호열, <강물에 대한 예의>

 

 

강줄기의 의도는 무엇인가.
역사의 강줄기, 인생의 강줄기.
오늘도 함부로 던진 돌에 영혼들의 눈물이 고여 바다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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