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 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되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 주는
따뜻한 눈 빛으로 있고 싶다
- 도종환, < 별 하나 >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생각하면 종로구 부암동 언덕이 떠오른다.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눕던 부암동 언덕, 그곳에서 바라본 반짝이는 물결의 별바다, 은하수. 그리고, 엄마가 나즈막히 불러주던 노래.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 이제 생각해 보니 사실 푸른 하늘 은하수는 대단한 논리 모순이다. 밤하늘은 결코 푸르지 않다. 푸른 하늘은 태양이 찬연한 한낮의 풍경인데 그속에서 별을 구별해 낸다는 것은 대단한 비약이다. 물론, 그시각 별은 그 광활한 우주공간에 실재하지만 유한한 인간의 눈은 빛을 파장을 꺽고 그 별을 발견할 수 없어야 한다. 칠흙같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야 별은 제 몸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떠랴. 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역사에 수많은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를 보며 나도 별이 되고 싶었다. 위인전을 보며 그러했고 세계명작을 읽으며 그러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내 주위에 보이진 않지만 항상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들이 있었다. 대낮같이 환한 인생의 절정기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생의 어둠이 땅거미 깔려오듯 할때 언제나 거기에 있던 별을 그제야 하나씩 발견한다.
노을이 깔려 오는 저녁 무렵, 오늘은 오랜 친구를 찾듯 밤하늘을 살펴볼 마음의 준비를 한다. 부디, 수억광년 거리에서 오래전 내게 보낸 빛을 이제야 찾아 보는 무심함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
창세전에 내게 보낸 사랑의 빛이 오늘 내가 감당못할 버거운 빚이 되는 까닭이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잠언 8:22-26]
도종환 시인 – 삶과 시 세계
1. 도종환 시인의 약력
도종환(1954~ ) 시인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창작과 비평》 신인상에 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는 오랜 기간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과 문학을 함께해왔으며,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하며 민중문학의 대표적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89년 노태우 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후 건강 악화로 투병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문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도 활동하며, 19대, 20대, 21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2. 대표작
도종환 시인의 대표 시집과 산문집은 다음과 같다.
- 《고두미 마을에서》 (1985)
데뷔작으로, 민중의 삶과 고통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 《접시꽃 당신》 (1986)
아내의 투병과 죽음을 다룬 서정적인 시집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1989)
시대의 아픔과 민주화 운동을 담은 시집으로,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1994)
유배와 같은 시간 속에서 삶과 자연, 사랑을 담아낸 시편들로 구성되었다. - 《해인으로 가는 길》 (2003)
수행자적 태도로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 《꽃 피는 철길》 (2015)
현대 사회의 아픔과 희망을 담아낸 작품이다.
또한, 그의 산문집인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역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3. 시 세계와 특징
- 민중과 현실을 노래하는 시
도종환의 시는 민중의 아픔과 시대적 고통을 담아낸 작품들이 많다. 특히 1980~90년대 한국 사회의 억압과 민주화 운동 속에서 시인은 노동자, 농민, 학생들의 삶을 노래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 개인적 서정성과 인간애
그가 쓴 **《접시꽃 당신》**은 민중시인의 면모와는 또 다른, 서정적이고 따뜻한 시 세계를 보여준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담담하게 기록한 이 시집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애도시로 자리 잡았다. - 자연과 생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
도종환의 후기 시집으로 갈수록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해인으로 가는 길》, 《꽃 피는 철길》 등의 작품에서는 자연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적 태도가 두드러진다. - 투쟁과 치유의 시
그의 시는 시대적 아픔을 증언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치유와 희망을 노래한다. 과거에는 독재정권과 싸우는 저항의 언어가 강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더 부드럽고 따뜻한 언어로 인간과 사회를 어루만지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4. 마무리 – 도종환의 시가 주는 의미
도종환의 시는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상처를 따뜻한 언어로 녹여내며,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준다. 그가 써온 시들은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며,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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